고향 모래사막과 메가 샌드박스

                                                                                                                                   한경에세이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한국의 알프스’로 불리우는 충청도 어느 마을에는 삼한시대부터 사람들이 몰려 살았다. 비옥하고 배수가 잘 되는 토양 덕분에 해방 이후까지 군민이 꾸준히 늘었다. 그러다 1964년 인구 정점을 맞았다. 도시에 산업 인프라가 조성되자 청장년은 일자리를 찾아, 아이들은 학교를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64년 군민 수가 100이라면, 30년 후 47까지 뚝 떨어졌다. 저출생 쇼크까지 맞닥뜨리면서 인구는 지금 28 수준이다. 60년새 고향 사람의 4분의 3이 사라진 셈이다.

최근 ‘식품 사막이 됐다’는 기사도 나왔다. 소비자가 많지 않아 상점가는 철수했고 식자재를 사기 힘든 마을이 됐다. 또 시장이 있어도 왕복 3시간 걸리는 교통 사막, 약국조차 닿기 어려운 의료 사막, 학교에서 떨어진 교육 사막이 되었다. 우리의 고향이 모래 사막이 된 느낌이다. 시군구 절반에 ‘소멸 위험’ 경고등이 들어온 상태다.

그렇다고 정부가 정부가 손만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될 무렵부터 지금까지 대도시의 인구집중을 막는 정책을 1백여개나 내놨다. 기업에게는 지방형 ‘혁신 단지’를 제공했다. 기업유치를 위한 경제자유구역, 규제자유특구, 기회발전특구 등 특성화 단지가 전국에 1천여개에 이른다는 걸 아시는가? 이주민에게는 ‘요람에서 대학까지’파격 지원이다. 아파트, 복합 문화공간뿐 아니라, 양육지원금, 돌봄교육, 스터디 카페보다 뛰어난 학습관, 대학 등록금도 지원한다.

다만, 소멸 경고등을 잠깐 꺼둘 수는 있어도 추세를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과감하고 새로운 방법이 필요한 때다. 우리는 영국의 규제 샌드박스를 들여와 철옹성 규제를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다. 혁신 사업자들에게 2년간 실증특례를 줬더니 혁신의 싹이 텄고. 이는 낡은 법과 제도를 고쳐나가는 밑거름이 됐다. 혁신의 모래 놀이터에서 사업을 했더니, 무선충전 자동차, 배달 로봇, 청각장애인 택시 등 혁신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제 메가 단위로 키워보면 어떨까? 샌드박스는 특정사업과 기간 동안만 특례가 주어진다. 그런데 최근 문제들은 인력, 산업 및 생활 인프라, 규제 등을 같이 풀어야 해결된다. 광역 지자체 규모는 되어야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 인공지능(AI) 메가 샌드박스에는 100만명의 도시민이 거대언어모델들을 써보고 수많은 피드백을 얻기 위해 첨단기업들이 모여든다. 기업들의 혁신이 꽃피면 규제는 사라지고, AI 산업 일자리가 느니 청년들의 아이 낳는 기쁨은 배가 된다.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의 정책실험이 요구되는 지금이다. 기업은 기술개발과 투자로, 지자체는 생활인프라와 규제를, 정부도 교육과 산업인프라, 규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 정부가 조건을 제시하기 보다는 기업이 요구하고 지자체와 정부는 해결해주는 식의 발상이 필요하다. 메가 샌드박스로 아이 웃음소리가 늘어나는 고향마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